Anish Kapoor (1954~)
삼성미술관Leeum 2012. 10. 25 - 2013. 2. 08
태 현 선 (삼성미술관 Leeum 수석큐레이터)
최근 몇 년 간, 세계 어디에선가는 늘 아니쉬 카푸어의 전시가 열리고 있거나 개최가 준비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는 요즘 세계미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이 집중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드디어 그의 동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 삼성미술관 Leeum에서 열려, 세계 미술 애호가들을 매혹시킨 그의 예술세계가 총체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올 해 59세인 카푸어가 작가 데뷔 이후 일관되게 추구해 온 것은 바로 예술을 통해 보다 무궁한 비물질적인 세계를 우리에게 일깨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 의지와 태도에는 인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성장 배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영국으로 유학 와 여러 서구 미술 경향을 접하면서도 카푸어의 예술적 관심은 늘 영적인 세계와 보편적인 원리를 표현하는 데 있었고, 그가 주로 영향을 받은 작가들은 물질적인 조형성을 넘어 다양한 사유를 추구한 예술가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의 이러한 예술적 성향을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국인 인도로 여행을 떠나서야 깨닫는다. 인도인의 삶과 문화를 체험하면서 그는 새삼 인도를 발견했고, 서양 미술 교육을 받는 동안 해소되지 않았던 예술적인 의문과 갈증에 스스로 해답과 확신을 얻게 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그가 선보인 작업 <1000개의 이름들> 시리즈는 일약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학업을 갓 마친 20대 중반의 제3세계 출신 청년 작가를 성공적인 데뷔로 이끌었다. 인도인들이 힌두교 의식에 사용하는 형형색색의 안료가루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업은 인도의 토속적인 문화를 차용하였으나 작업은 결코 이국성이 강조되거나 오리엔탈리즘에 호소하는 형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단순하고 추상적인 형태의 오브제와 가루 안료를 결합한 작업으로, 섬세한 안료가 오브제의 표면부터 그 주변의 바닥까지 경계가 없이 뿌려져 마치 오브제가 바닥에서 저절로 솟아나온 듯 했다. 카푸어는 이를 통해 가시적인 오브제의 영역 아래에 더 큰 세계가 잠재되어 있음을 암시하고자 했다.
지난 30여 년에 걸친 카푸어의 예술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세계,’ 물질적인 가시 세계 너머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도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90년대에 시작된 보이드(void) 작업은 그 핵심에 있다. 빔, 비어있음, 공백을 의미하는 보이드 작업은 말 그대로 조각의 내부가 빈 움푹 파인 빈 공간이 작품의 중심이다. 짙푸른 혹은 검붉은 안료 가루로 도포된 내부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이 가득하여 비어 있음을 깨닫기 어렵다. 비어 있지만 비어 보이지 않는 모순은 가벼운 혼돈을 야기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빈 공간은 결국 채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존재와 생성이 잠재된 공간으로, 카푸어의 보이드 작업은 점차 창조의 맥락으로 전개되고, 몸, 건축, 공간을 아우르는 작업으로 확장되었다.
안과 밖이 이어지고, 이질적인 속성이 공존하고, 무기체가 생명현상을 보이고, 재료의 강렬한 물질성이 비물질적으로 다가오는 그의 작업은 세상 만물에 대한 우리의 상식과 관념을 뒤집고, 우리의 눈과 정신이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세계를 초월하도록 이끈다. 바로 이런 특징들로 인해 카푸어의 작업은 명상적, 근원적, 영적, 철학적, 종교적, 형이상학적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사실 이는 그의 작업이 우리의 원초적이고 실질적인 감각에 먼저 다가오기에 가능한 이야기로, 그의 작품은 호기심, 신비로움, 두려움, 흥미로움, 몰입, 압도적임, 경외감, 장엄함, 시적 감성 등 일상 속에서 자극받지 않는 우리의 굳어진 감각들을 뒤집어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준다. 이렇게, 카푸어는 작업을 통해 우리의 보다 보편적이고 폭넓은 감각과 영혼에 닿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을 사진이나 작은 도판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우리의 감각과 영혼을 사로잡는 그의 작업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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