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SOOJA
김성원 (전시기획/비평,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관객들은 ‘바늘’과 ‘보따리’를 통해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작가의 몸과 함께 김수자의 작업세계에 동참해 왔다. 그의 퍼포먼스와 오브제들에서 포스트 모던적 유목주의 혹은 글로벌 컬처를 읽는 사람들도 있고,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한국적 오브제들과 색깔, 동양문화에 대한 참조들을 민족적 정체성, 페미니즘 등과 연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동, 다문화주의, 다름을 지향하는 오늘날, 각각의 문화적 코드와 참조들은 소속 집단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각기 다름의 자율성을 보존하려는 시도들, 또 그것의 평이한 공존만을 지향하는 것이 오늘날 예술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면, 역설적으로 이러한 정체성들은 민속적 혹은 이국적 요소들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작가들은 그들 고유의 문화에 대한 참조들과 지역적 코드들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김수자의 작업세계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김수자 작업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지역을 넘어서 전지구적 차원에서 그 의미를 구축하며, 순회할 수 있는 경로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그의 작업은 각기 다른 문화적 종자들의 다수성 사이에서 모종의 협력을 시도하며, 또 그것의 특이성들 간의 지속적 번안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전반에서 감지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 미학과 ‘레디유즈드’ 개념은 한국적 오브제들, 지역적 문화, 그리고 동양 사상을 서구 미술사와 연결시키고, 새로운 번안을 거치며, 인류의 삶을 순회할 수 있는 특이적이고 독창적인 경로를 형성하고 있다.
김수자의 보따리, 이불보, 바느질 등은 한국전통, 동양사상과 서구 미술사적 코드를 가로지는 하나의 모델을 탄생시켰다. 김수자의 모든 사물들은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이다. 물론 ‘레디메이드 개념’은 오늘날 더 이상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슈는 아니다. 핵심은 김수자가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을 취한 것에 있다기 보다는, 그 레디메이드 개념을 어떻게 확장하고 전환시켰는가에 있다.“나의 작업은 이미 존재하는 오브제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 선재성(先在性) 특히 서양의 관점에서는 일상 속에 감춰져 있다.(...)미술사에서 그것의 고유 컨텍스트를 창조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작업이다. 나의 작업은 그 이전의 삶이 없는 새로운 오브제를 만드는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1)
보따리, 이불보, 혹은 다른 사물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미 만들어진 것(행위/결과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어져 왔는가(시간/경험)에 있는 것이다. 즉, 작가가 누군가가 입었던 헌 옷가지나 덮고 살았던 이불보를 사용했을 때, 작가는 그 물건을 사용한 사람의 ‘삶’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레디메이드(readymade)’에서 ‘레디유즈드(readyused)’로의 이행은 이불보를 꿰매고, 보따리를 싸며,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여정에 동참하는 ‘수행성’을 통해서 전개된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었던 오브제들의 보이지 않는 시간들, 삶, 그리고 그 흔적을 통해서 현재를 맥락화하는 과정은 김수자의 작업에서 언제나 최소한의 개입과 최소한의 행위로 탄생된다. 그의 작업의 최소한의 미학은 ‘아무 것도 만들지 않으며, 그 무언가도 되려고 하지 않는’ 일종의 참선 과정과도 같다. 만들지 않으면서 만든 것보다 더 강렬한 것을 드러내는 것, 소멸을 통해서 영속성을 가시화하는 것, 최소한 것으로 최대한의 것을 말하는 것, 이것이 바로 김수자의 작업세계인 것이다.
1) 김수자/니콜라 부리요 인터뷰에서 인용, in Cat. <Kim Sooja: Condition Of Humanity>, 2003
* 이 글은 2010년 아뜰리에 에르메스 김수자 개인전 <지수화풍> 도록 글에서 일부 발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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