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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현대미술관회

시원始原으로의 의지로 그린 명상冥想의 획들

오수환


심 상 용 (미술사학 박사, 미술비평)


05.variation, oil on canvas, 287x245cm, 2009

오수환은 대상의 진술이나 묘사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상이나 그것의 소통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수환의 회화가 실현코자 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 부정이며, 진술이 아니라 침묵이고, 묘사가 아니라 지우기다. 이 미학(美學)은 시각주의자의 인식론에 의존하지 않으며, 해서 의당 눈에 보이는 세계에의 충실성에 부응하지 않는다. 예컨데 사물과 빛, 채색의 긴밀한 조형적 유희를 탐닉하는 시선도 이 회화공간에선 길을 잃고 말 것이다.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조사하는 표현주의적 자질도 이 세계와는 무관하다. 외부세계에 대한 반응이나 존재의 감추어진 이면을 드러내는 것, 더 잘 보게 하거나 더 잘 느끼게 만드는 것은 이 세계의 정체와 질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그의 회화는 사물을 기념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를 우주에 추가하는 덧없는 욕망행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렇듯, 오수환의 붓질들에선 세계가 아니라 세계와는 결별이 목격된다. 하나의 획이 그어질 때 그것은 세상과의 또 한번의 결별에 대한 확인이다. 그것은 모두 다르며 정확하게 동일한 획은 없다. 하나의 획은 결코 이전 것의 반복이거나 이후의 것에 대한 지시나 예견을 내포하지 않는다. 각각의 획들은 동일하거나 유사해 보이지만 전적으로 독립적이다. 각각 매순간 새롭게 확인되어야 하는, 세계와의 결별들에 대한 사유의 기록에 상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항상 돌고 변하여 한시도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는 만물의 이치에 대한 겸허한 수용으로서의 사유이기도 하다.

이 사유의 근거는 노자의 ‘무위(無爲)’사상과 그 맥락을 공유한다. 현상계 내의 인연으로 촉발되는 모든 ‘유위 (有爲)’의 것들을 이슬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불가(佛家)의 ’제행무상(諸行無常)’도 이 미학의 지평에 융합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들, 마음으로 다가오는 물상(物象)들을 그 본연의 자리로, 그림자와 이슬의 자리로 되돌려 보내는 상직적 표지로서 무수히 반복되는 획들은 그러므로, 어떤 조형적인 훈련이나 기술의 숙달과도 혼돈되어서는 안된다. 오수환은 한 때 당대사회에 대한 치열한 관심으로 사실적이고 참여적인 회화에 심취했었다. 하지만 하나의 이념이나 사상, 그리고 그것들이 허용하는 입장이나 관점의 빈곤함과 그 안에 스스로를 유폐시킴으로써 불가피해지는 사유와 존재의 위축에 대한 반성이 그로 하여금 다른 예술의 길을 모색하도록 촉구했다. 존재 본연의 자유에 대한 갈증이 사회적 관여행위로 채워질 수 없다는게 분명해 진 것이다. 유입된 추상표현주의(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ts)와 그 비정형(informal) 기법에 내포된 조형정신, 세계와 사물로부터 이탈을 시도했던 당대의 조류가 시야에 들어 온 것이 그 즈음이었다. 예컨데 마크 토비(Mark Tobey)의 경우처럼, 하나의 조형언어가 ‘세계는 한 국가며 인류는 한 형제’라는 일련의 신앙적 사유를 그 근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사유로서의 예술론에 관심이 끌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오수환의 회화는 욕망이 아니라 ‘욕망에서 벗어나기’에 의해 주도되기 시작했다. 이념적 실천이나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설명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형태, 삶의 원천에 가장 근접한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 오수환의 새로운 예술적 표지로 자리잡은 것이다.


04.variation, oil on canvas,287x245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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