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미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임충섭은 1970년대 초 뉴욕으로 건너가 40여년 넘는 세월동안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해온 원로작가이다. 그는 낯설고 배타적인 외국의 미술 현장 속에서 한순간도 화업을 놓지 않고 창작에 전념한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임충섭: 달, 그리고 월인천지》는 1960년대 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그의 작업 세계 전반을 총망라해서 보여 줌으로써, 임충섭의 삶과 미술을 조망하는 전시이다. 이는 작가 개인의 예술적 성취에 대한 총체적 연구일 뿐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의 또 하나의 지류인 ‘해외 거주 한국 작가'의 미술을 국내 관객에게 환기시키는 의미 있는 기회이다.
임충섭의 작업은 회화, 드로잉, 조각, 오브제,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주저 없이 사용하며 거침없이 넘나드는 것이 특징이다. 일관된 조형적 방향성 없이 그야말로 드넓은 고원마냥 넓게 펼쳐져 있는 그의 작업풍경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생겨난다. 작가는 어떻게 익숙하지 않고 낯선 문화, 환경 속에서 생활하며 견뎌내 그와 같은 예술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현기증이 날 만큼 수많은 영향관계 속에서 자기 특유의 조형세계를 발견하고 구축해낸 저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리고 다소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뻗어 있는 조형 갈래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까.
흔히 스쳐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부분도 섬세한 감수성과 관찰력으로 포착해내는 임충섭에게 초등학교 시절 타지에서 온 미술선생님과의 만남,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 ‘바깥’으로의 내딛음, 그리고 그 곳에서의 수많은 접촉들은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이 가진 관념과 태도를 무화(無化)시키게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가장 큰 정신적 충격이자 초로가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그를 사로잡고 있는 사건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임충섭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그 무엇으로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가지게 하였고, 모든 존재에 대한 유한성을 자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 세상에 무엇도 “고정된 원칙과 규범일 수 없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체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천적으로 회귀 불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공허와 불안은 1973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그의 실존적 상황과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숨 쉬는 순간순간 마주하게 되는 ‘타자’, ‘바깥’이 자신의 진짜 현실임을,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생존의 필수조건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바깥’의 낯설고 두려운 공기를 호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충섭이 작가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 한국현대미술계는 앵포르멜 추상에서 벗어나 소위 한국적 모노크롬 회화라 불리는 단색화가 주류적 흐름으로 자리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당시 영향력 있는 작가들은 대부분 단색조의 전면 추상을 그렸다. 일종의 화파 성격을 띤 단색화 움직임은 예사 이념이나 운동과 마찬가지로 자체 내의 수렴적 방향성과 원칙을 통해 순혈주의를 유지하였다. 미술 외적으로 그 시기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민족, 국가를 중심으로 한 집단적 정체성과 억압적 사회규범이 강조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과잉 집단화, 동일성에의 귀속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가지고 있는 임충섭에게 당시 미술계 내외의 분위기와 상황은 지극히 폐쇄적인 구조로 읽혀졌다.
1970년대 초 뉴욕에 도착하여 이후 뉴욕에서 경험하게 된 서구의 개념적이고, 설명적인 미술경향과도 거리를 두기 위해 지치지 않고 노력하였다. 수많은 이항 대립적 요소와 상황들이 충돌하는 현실 속에서, 임충섭은 고착화된 원칙에 따라 스스로를 규정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하다. 오히려 그 모든 복합적 요소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하고 마주하는 장을 펼쳐 열어놓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작업이 추구해야할 방향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착해야할 종착점을 정하고 그 지점에 다다라 정박한 채 닻을 내리는 영토화된 존재가 되기를 분연히 거부하고 탈범주, 탈소속을 자청하였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이는 <월인천지>는 작가의 세계관, 예술관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달 영상, 전통 농기구인 키를 닮은 설치물, 한국 전통건축인 정자의 미니어처 등을 기반으로, 그 구성은 설치되는 공간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는 작업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전시되는 장소의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을 모두 작품의 일부로 포용하는 대규모 인스톨레이션 작업이다. 임충섭이 여행하며 읽은 삼국유사 속 ‘강 위에 뜬 수없이 많은 달(월인천강)’이 유머러스하게 ‘사방천지 온 마당에 떨어진 달(월인천지)’로 변주된 것인데, 전시 공간 속 마당을 밟고 서있는 우리에게 보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경험된다. <월인천지>의 핵심은 ‘빛’이다. 이 빛은 규정할 수 없지만 감각할 수 있는 그런 ‘빛’이다. 그 안에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빛들이 교차한다. 적분화된 빛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어느 한 순간 그 무엇으로도 고정되지 않은 채 스스로 변화하는 빛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각기 개별적 기억과 경험 속에 잠재되어 있던 ‘빛’과 만나게 된다. 임충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작품은 모두, 일종의 풍경화입니다. 마음의 풍경... 이 풍경 속 모든 것들은 소실점으로 끌려들어갑니다. 소실점은 마치 빛처럼 하얗고 비어있습니다. 여기서 모여 비로소 풍경화가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이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아니기도 한 이 소실점이 작가에게는 빛의 공간이고, 생성의 공간인 것이다. “빛은 어머니입니다...” 마치 고백하듯 털어놓은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얗게 비어있는 빛의 공간이 의미하는 바가 ‘허무한 텅 빔’이 아니라, 모든 차이들이 만나는 여백, 그래서 시끌벅적한 생명으로 가득 차고 요동하는 열린 유(有)라는 점이다. 우리는 ‘열림’, ‘통합’이 생존의 전제 조건임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속에서 회복해야할, 그리고 극복해야할 문제들을 고민하는 와중에 저만치 멀리 소실점 근처에 어렴풋이 발하는 빛이 눈길을 잡아끈다. 임충섭의 하얀 빛의 장(場)으로, 한껏 열린 여백인데 흥미롭게도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관계 항들이 자리하고 있다. 작가가 말한 “자기 내어놓기”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볼모로 잡아두는 폐쇄적 제약의 감옥에서 결연히 탈출을 감행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져 나오는 행위이다. 이것이야말로 관계 내 존재로서, 고정될 수 없는 무한 열림과 만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임충섭이 건네는 의미심장한 시적 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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