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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현대미술관회

탄생 100주년 기념, 곽인식


박수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National Museum of Qatar, Doha, Qatar
곽인식, 작품 85-5-10, 캔버스, 종이에 채색, 183×232×(2)cm,198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명이식

작품, 패널에 유리, 72x102cm, 196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곽인식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내 및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과 자료들을 모은 기념전을 개최하고 있다.

작품 62-206, 패널에 석고, 유리병, 51x73cm, 1962

이번 전시는 국내 및 일본의 작품들과 미공개 자료들을 통해 곽인식 작품이 차지하는 위치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되었다.


곽인식은 시대를 앞서 간 작가였다. 유리, 황동, 종이 등 다양한 소재의 물성을 실험하는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평론가 미네무라 토시아키는 “1962년의 (미술계의) 전진은, 곽(인식) 개인의 변모인 동시에, 60년대 말 일본 미술의 변모를 예고하는, 은밀한, 그러나 중요한 사건으로 명기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1960년대 전반 전위공간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나이카화랑(内科画廊)에서, 깨진 유리를 전시했던 1963년 곽인식의 개인전은 작가의 전위성을 보여주는 실례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초기부터 거의 일관되게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소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점, 원이라는 기본적인 형상이었다. 이러한 물질에 대한 본질적 탐구와 조형요소의 근원성은 이 시기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곽인식이 일본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재일 한국인이라는 특수성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다수의 작품들이 보존처리 되었다. 이것은 미술관 개관 이후 최대의 숫자이다. 상태가 좋지 않은 작품 100여점을 골라 곰팡이를 없애는 훈증 처리를 진행하였고 최종 48점을 보존처리 대상 작품으로 선정, 복원을 마치고 이번 전시에 소개하게 되었다. 전시장은 시기별로 구성하되, 작품들과 자료들을 같이 배치하여 작품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하였다. 연재해 온 아사히 신문 삽화 원본, 한국 작가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관련 사진, 야외조각 설계도면 및 제작과정을 담은 비디오, 실현하지 못한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자료 발굴을 통해 작가의 삶과 일본에서의 위치, 한국 화단에 미친 영향 관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또한 근현대기를 살았던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관객들에게 보다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그를 기억하는 한국, 일본의 평론가들과 작가들 11인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제작하였다.

‘강변에 있으면 어느 틈엔가 돌맹이에게 촉각이 솟는다... 만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매력과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물을 관찰하고 귀 기울이고 교감하면서 미술계에서 앞선 걸음을 재촉해왔던 곽인식 작가는 생애를 바쳐 치열하게 작업해왔으며 어려운 처지의 한국 작가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롭고 지적인 스승이자 선배였다.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미술 이전의 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했던 활동가이기도 했다. 곽인식의 삶과 작품세계를 통해 물질의 개념이 어떻게 발현되고 전개되어왔는지 물질의 개념 형성과 그 의미를 일본과 한국의 맥락에서 살펴보고 공감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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