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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현대미술관회

피렐리 행거비코카와 안젤름 키퍼

Pirelli HangarBicocca and Anselm Kiefer

우순옥 (작가, 이화여대 교수)

Anselm Kiefer, The Seven Heavenly Palaces_Sefiroth, 2004-2015, photo : U Sunok

최근 몇 달 동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 인류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지난해 여름 스위스 실스-마리아의 청정한 숲 속과 호숫가를 여유로이 산책하고 베니스 뒷골목 어느 낡고 어둑한 창고에서 리투아니아 작가들의 아름다운 퍼포먼스‘sun & sea’를 따라 허밍하며 8월 어느 날 모디아노 소설 속 주인공처럼 텅 빈 공허가 밀려드는 한 낮의 밀라노를 여행할 수 있었던 자유로운 시간들이 먼 꿈 속의 기억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중 밀라노의 예술을 위한 새로운 장소를 잊기 전에 기억해 보기로 한다.



피렐리 행거비코카, 밀라노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환경과 도시 재생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각 지역의 낙후된 과거 산업 유산에 새로운 기능을 모색하는 프로젝트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영국 런던 템즈 강변의 버려져 있던 화력발전소를 멋지게 리모델링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나 점점 쇠락해가던 스페인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세우면서 도시 기능 자체를 철강산업 도시에서 문화예술 도시로 탈바꿈한 플랜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재생 프로젝트일 것이다.


밀라노의 ‘피렐리 행거비코카’라는 거대한 예술 공간 역시 도시 재생과 산업 유산 재활용 맥락에서 탄생되었다. 피렐리는 밀라노 비코카 지역에 기반을 둔 자동차 관련 제조 기업이며 대규모 타이어 회사로서 이탈리아를 최고의 산업국가로 이끄는데 이바지해왔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그렇듯이 산업 형태의 변화로 1970-80년대의 부흥과 영광을 뒤로 하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며 점차 쇠퇴하자 폐허처럼 오랫동안 문닫고 있던 공장을 드디어 개조하여 2004년 ‘피렐리 행거비코카’라는 설치미술 위주의 대규모 비영리 현대미술공간으로 재탄생 시켰다. 그곳에 안젤름 키퍼의 십년 프로젝트로 초대형 설치 작품이 영구 소장되어 있다. 밀라노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성당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생애 단 한 번만이라도 직접 보기 위해 전세계로부터 수많은 관광객이 어렵사리 모여든다. 키퍼는 다빈치를 의식했을까?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고 쉽게 잊혀져 가는 오늘날, 한 예술가가 고국을 떠나 십 년간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니 과연 어떠한 불후의 명작일지 사뭇 궁금하다.


피렐리 행거비코카는 밀라노 시내 중심에서 1시 방향 북쪽으로 자동차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나는 두오모 성당 근처 스타벅스 리저브 앞 cordusio역에서 지하철 M1을 타고 찾아갔다. Sesto Marelli역에서 하차하니 퇴색된 회색 빛의 건조한 거리가 펼쳐진다. 이정표도 없는 낯선 거리를 구글 맵에 의존하여 십여분쯤 걷다 보니 마침내 철길 건널목 너머로 높고 거대한 외벽 이마 높이에 ‘Pirelli HangarBicocca’라는 명패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향하는 허름한 육교 위엔 한여름 뙤약볕에 웃자란 잡초들이 무성하다. 인적 없는 오후 뜨거운 길을 따라 펼쳐진 긴 벽의 행렬이 마치 초현실주의자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그림처럼 적요롭고 황량하다. 드디어 길 끝 모퉁이를 돌아 찾은 단출한 입구. 작은 스퀘어 수풀 속에서 미니멀한 붉은 철조각품들이 마치 무솔리니풍으로 제복을 입은 병정들처럼 치솟은 자세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쉐드Shed, 쿠보Cubo, 나바테Navate의 이름으로 구분되어 있는 거대한 공장 형태의 전시실은 굵직한 철 빔으로 얽혀진 검은 벽면과 드높은 천정이 과거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흔적처럼 어둡고 강인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어 결코 낭만적이거나 낙천적일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밀라노 비코카 지역의 무수한 공장들은 연합군 폭격의 표적이 되었고 특히 피렐리 행거비코카가 위치한 지역은 무서운 파괴를 겪은 장소라 한다. 그런 역사적 상흔을 겪은 이곳을 위해 피렐리는 자국의 작가가 아닌 독일 작가 안젤름 키퍼에게 주문 제작을 의뢰했다. 키퍼는 독일의 어두운 과거사를 들춰내며 독일 현대사에서 가장 터부시되는 주제들을 다뤄오면서 가장 성공적이기도 하면서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기에 키퍼와 전쟁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던 이 장소와의 만남은 왠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피렐리는 흥망성쇠 역사의 유구한 세월 속에서 점차 쇠락하며 잊혀져 가던 이곳을 ‘문화예술’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옛 명성을 다시 회복하고 미래의 부흥을 함께 나누어 가고자 혹시 꿈꾸지 않았을까. 밀라노는 그야말로 ‘스탕달 신드롬’에 버금가는 최고의 예술, 미켈란젤로의 애잔한 슬픔이 느껴지는 마지막 작품 ‘피에타’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자랑스럽게 오래도록 품고 있는 멋진 도시가 아니던가.



안젤름 키퍼, 일곱 개의 천상의 궁전


피렐리 행거비코카 재단은 2004-2015년 ‘일곱 개의 천상의 궁전The Seven Heavenly Palaces’라는 키퍼의 작품을 영구 설치했다. 이 새로운 설치 작품은 약 3000평의 면적에 높이가 30미터에 달하는 피렐리 행거비코카 공간을 위해 특별히 계획된 것이며 2015년 9월 드디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처음 마주한 전시장은 마치 멜랑콜리가 점령한 세계 같았다. 후끈하게 밀려온 더위와 어둡고 건조한 공간 위에 떠도는 기이한 질감의 공기, 방문객도 없이 엄청난 크기의 작품들만 덩그러니 놓인 무거운 침묵의 존재감, 그리고 각종 재료가 혼합된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키퍼 특유의 회색 톤의 우울한 그림들과 하늘을 떠받드는 신전의 기둥처럼 시멘트 콘테이너를 쌓아 올린 듯한 7개의 거대한 탑들은 어떤 몰락의 에티카Etica를 나타내는 듯하다. 마치 전장에서 고통과 상흔으로 뒤엉킨 채 겨우 살아나온 역사적인 무언가로 형상화된 모호하고 신성하며 고독하고 위대한 폐허의 풍경. 납으로 이루어진 책들, 파괴된 액자, 유리 조각들, 마른 꽃들, 사진들, 판유리에 알아볼 수 없이 쓰여진 먼지 덮인 숫자들이 폭격을 맞아 흐트러진 파편처럼 ‘일곱 개의 천상의 궁전’ 곁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 출신인 Vicente Todoli 가 기획한 일명 ‘Kiefer Towers’로 알려진 이 작품은 각 탑의 무게가 무려 90톤이며 높이는 14-18미터이다. 서구문화의 어떤 종교적, 역사 문화적인 해박한 지식이 요구되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키퍼의 시적인 숙고와 히브리 종교의 해석으로 전후 유럽 문명의 폐허의 의미를 다시금 엿볼 수 있다. 전통적인 신화와 역사, 다양화 문화의 주제를 결합하고 있는 그는 예술이 상처를 입은 민족과 고통을 당하고 갈라진 세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여기서 우리 모두에게 타락한 물질적인 세계로부터 벗어나 영적 여정의 상상력으로 신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시도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어떤 예술적 방향을 엄숙한 표현으로 제시한다.


Anselm Kiefer, Alchemie, 2012 photo : U Sunok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던 1945년에 태어나 나치의 비극적 종말을 어린 시절에 맞이한 키퍼는 중요한 독일 현대미술가중 한사람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성장한 그는 독일의 문화적 위대함과 비극을 동시에 끌어안은 채 본질적인 방식으로 역사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유대교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어둡고 무거운 긴장과 성찰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일련의 격변이 있은 후 그가 고국 독일과 그 문화를 떠났다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990년대초 독일을 떠나 남 프랑스 바르작Barjac으로 이주한 키퍼는 그동안 애도와 멜랑콜리로 점철되었던 과거 그의 작품과는 달리 그곳에서 ‘일곱 개의 천상의 궁전’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르작에서의 또다른 총체적인 경험이 내재된 예술 작품이며 어쩌면 더 나아가 그의 삶의 터전이자 예술 장소인 ‘바르작’ 그 자체가 그의 작품일지 모른다. 일찍이 키퍼는 그의 세대의 다른 예술가들보다도 역사와 다양한 문화적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유형의 문화 생산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다양성을 포용해 왔다. 특히 그리스, 고대 로마,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 문화와 신비로운 신화를 포함시키며 그의 문화적, 예술적 언급을 작품 속에서 표현하며 확장해 나갔다. 그러면서 천문학적으로 체계가 세워진 별자리, 혹은 어떠한 고고학적 유적지와도 같은 ‘일곱 개의 천상의 궁전’을 통해 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또는 역사와 서구 철학, 신화적 이야기를 하며 신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수행해야 하는 지적 여행 임을 예지적으로 설명한다. 나는 그의 고전적 교훈이 담긴 성서같은 그림들과 무너져 내리는 듯한 슬픔이 느껴지는 탑들, 그리고 그 곁의 고고학적 잔해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넘치는 에너지로 표현된 그의 작품들 속에 집요하고도 우울하게 담긴 신비한 우주론을 느껴보고자 했다. 5점의 그림과 7개의 탑의 수수께끼 뒤에 어른거리는 키퍼의 보이지 않는 심연의 그림자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불그스름한 8월 오후의 석양이 장관이다. 세계가 진실을 무언의 아름다움으로 말하는듯 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마치 수행자처럼 맑고 순수하던 조각가 정재철 선생이 투병 끝에 안타깝게도 작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행이 곧 삶이었던, 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던 작가. 문득, 그가 남긴 무려 7년간 18개국을 거친 대장정의 기록/설치 작업인<실크로드 프로젝트>나 최근 발표한 30년간 지속된 일련의 고고학적인 작업들이 안젤름 키퍼의 ‘일곱 개의 천상의 궁전’에 못지않은 방대하고 체계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니,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의 너무 이른 먼 여행길이 더욱 아쉽고 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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